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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FM 세상의 모든 음악/┖─ 세모음 앨범 별 듣기

세상의 모든 음악 VO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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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iger in the Night / Colin Blunstone 3:04
1-2. Imagine / Eva Cassidy 4:36
1-3. L’air du Soir / Andre Gagnon 5:47
1-4. The Dark Night of the Soul / Loreena McKennitt 6:44
1-5. To Treno Fevgi Stis Okto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Nicos 3:12
1-6. Yolanda / Pablo Milanes 4:38
1-7. The Railway Station / Evanthia Reboutsika 3:42
1-8. Bantry Girls Lament / irish whistle. Joanie Madden, vocal. Mary Black & Frances Black 5:12
1-9. Tierra del Fuego / Joel Francisco Perri 5:23
1-10. Ninna Nanna / Angelo Branduardi 7:24
1-11. Forest Hymn / Bill Douglas 4:15
1-12. Take it with Me / Solveig Slettahjell 4:36
1-13. Si Dolce e il Tormento / trumpet. Paolo Fresu, accordion. Richard Galliano, piano. Jan Lundgren 6:03
1-14. Tristesse (쇼팽/이별곡) / Tino Rossi 3:08
1-15.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 강상구 (해금. 정수년) 5:31

 

 

 

월드음악의 대명사 [세상의모든음악 9집] 15th Anniversary 그리고 9번째 음악이야기

열다섯 그루 나무가 나란히 서있으면 울타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람도, 햇살도, 마음 따뜻한 사람들도 무시로 통과시키는 착한 울타리. 혹시 마음이 서러운 날에는 녹말이 가라앉듯 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될 수 있습니다. 열다섯 그루 나무는 작은 정원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새들의 지저귐과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작은 정원. 해질 무렵, 그 정원에 편안한 의자 하나 내어놓고 저물어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보고 싶은 그런 정원.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심어놓은 열다섯 그루의 나무가 길 위의 사람들이 잠시나마 기댈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었기를,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는 정원이 되고 휴식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이 정원에 자주 들러 마음을 나누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01_ Tiger in the Night / Colin Blunstone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그널 뮤직 ‘Tiger in the Night’은 작곡가 마이크 바트 Mike Batt가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의 시 ‘The Tyger’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1794년에 발표된 시 ‘The Tyger’는 이렇게 시작된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호랑이는 ‘순수의 세계’에 대비되는 ‘경험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영문학에서는 해석한다.
이 곡은 명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 Helena Bonham Carter가 주연했던 영화 ‘A Merry War’ (원제 ‘Keep the Aspidistra Flying’)의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다. 마이크 바트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귀에 익은 ‘Tiger in the Night’을 콜린 블런스톤 Colin Blunstone의 노래로 듣는다. 콜린 블런스톤은 1945년 생으로 한때 Alan Parsons Project의 객원 보컬이었고, Rock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이크 바트가 클래식에서 Rock, 오페라까지 아우르는 전방위 음악가인 것처럼 콜린 블런스톤 역시 Rock에서 클래식까지 어떤 장르든 소화해내는 스펙트럼 넓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02_ Imagine / Eva Cassidy 기타 하나로도 듣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에바 캐시디 Eva Cassidy. 어쩌면 기타 하나만 들고 노래하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더 깊고 호소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1981년부터 지역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보컬로 참여했고, 1992년에는 척 브라운 Chuck Brown과 함께 음반을 냈으나 주목 받지는 못했다.
1996년, 워싱턴의 재즈클럽에서 노래하는 에바 캐시디를 친구들이 캠코더에 담았다. ‘Live at Blues Alley’는 에바 캐시디의 유작이 되었다. 1996년 11월, 에바 캐시디는 피부암으로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기타 치고 노래만 부르면 되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는 에바 캐시디. 그녀가 남긴 노래 중에는 여기 수록된 ‘Imagine’을 비롯해서 ‘Tennessee Waltz’, ‘고엽’, ‘Fields of Gold’ 같은 리메이크 곡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노래보단 이미 알려진 노래를 불러야 하는 무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를 때에도 그녀는 마치 그녀가 처음 부르는 것처럼 색다른 해석을 들려준다. 존 레논 John Lennon의 명곡 ‘Imagine’을 이렇게 거침없이 부르는 가수가 또 있을까? 존 레논의 ‘Imagine’과는 또 다른, 에바 캐시디만의 ‘Imagine’이다

03_ L’air du Soir / Andre Gagnon 앙드레 가뇽 Andre Gagnon은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몬트리올 음악원을 졸업한 뒤 파리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솔리스트로서의 꿈을 품고 귀국한 뒤에는 모차르트 연주회로 시작해서 Rock 뮤지션과의 협연, 오페라 작곡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열정적인 음악활동을 해왔다. 앙드레 가뇽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서 우리나라에는 다소 늦게 알려졌다. 1990년대 후반에 클래식 FM의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여백의 미를 갖춘 그의 연주는 코드 음악으로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전히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지만, ‘가뇽 스타일’로 불리는 잔잔한 작품들을 통해 휴식과 위안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L’air du Soir’- ‘저녁바람’은 현악기의 선율로 시작되는 서두도 인상적이지만, 피아노로 그려내는 저녁 풍경이 인상파 화가의 붓 터치처럼 부드럽게 다가온다. 벽에 풍경화 한 점 걸어놓듯 매일 저녁마다 걸어두고 싶은 곡이다.

04_ The Dark Night of the Soul / Loreena McKennitt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시작되던 2002년, 청취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리퀘스트를 받은 곡 중의 하나가 ‘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다. 먼 나라의 전설을 들려주듯 아득하게 노래하는 로리나 맥케니트 Loreena McKennitt는 캐나다 출신이면서도 켈틱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다. 부모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왔으니 켈틱 음악은 그녀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음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로리나 맥케니트는 여행을 통해, 셰익스피어나 예이츠의 시 같은 고전을 통해, 다른 문화권의 언어와 철학과 종교를 연구하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
‘The Dark Night of the Soul’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가 공존하던 15세기 스페인에서 영감을 받은 음반 [The Mask and Mirror]에 수록되어 있으며, 십자가의 성 요한 St. John of Cross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그러므로 이 곡에서 안개 자욱한 중세의 밤이 느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05_ To Treno Fevgi Stis Okto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Nicos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Mikis Theodorakis는 “나에게 노래의 의미는 ‘폭탄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현대사의 비극적 시대에 던져진 ‘노래로 만든 폭탄’, 그의 의도대로라면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가장 강력한 폭탄이자 가장 아름다운 폭탄이었을 것이다. 테오도라키스는 그리스의 중산층이 외면하던 렘베티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니코스 Nicos의 연주로 듣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아그네스 발차 Agnes Baltsa의 노래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렘베티카다운 느낌을 담고 있다. 그리스의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니코스는 유명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9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야니 Yanni 같은 그리스 음악가들과 함께 활동했고, 그리스를 사랑한 가수 밀바 Milva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11월, 안개 자욱한 8시의 기차역. 카테리니 행 기차가 품고 있는 애절한 이야기를 속으로 삼키며 니코스의 연주를 들으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기차가 이제 막 플랫폼을 떠나고 있는 듯하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말한 ‘폭탄’의 의미를 알 것 같다.

06_ Yolanda / Pablo Milanes
쿠바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에바 트로바 Nueva Trova를 기억해야 한다. 쿠바 혁명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음악운동인 누에바 트로바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일어난 누에바 깐시온 Nueva Cancion과는 ‘민족의 음악을 찾는다’는 의미에서는 결이 같고, 저항의 음악이라는 대목에서는 결이 조금 다르다. 실비오 로드리게스 Silvio Rodriguez와 더불어 누에바 트로바의 한 축을 담당했던 파블로 밀라네즈 Pablo Milanes의 곡 ‘Yolanda’는 쿠바 사람들의 ‘국민 연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콤한 선율과 카리브 해의 느긋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Yolanda’는 어디에서나 환영 받는 노래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파블로 밀라네즈가 아내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Yolanda는 특별한 ‘그녀’이면서 동시에 ‘조국’의 다른 이름이라고 종종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 노래는 그저 평범한 사랑 노래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는 가사처럼 ‘Yolanda’는 평범한 여인의 이름은 아닐 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켜낸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Yolanda’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07_ The Railway Station / Evanthia Reboutsika 1959년, 터키의 이스탄불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 A Touch of Spice’에는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알려주는 신비로운 세계와 어린 파니스의 첫 사랑이 매혹적으로 펼쳐진다. 파니스는 첫사랑 소녀와 빨간 우산을 들고 보스포러스 해협의 등대로 간다.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품고 있는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두 세계를 함께 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듯 빨간 우산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린다. 그리스와 터키의 분쟁으로 파니스는 이스탄불을 떠나게 된다. 기차역에서 첫사랑 소녀와 이별할 때, 소년의 안타까운 걸음을 따라 흐르던 에반씨아 레부치카 Evanthia Reboutsika의 음악 ‘The Railway Station’은 소년이 안으로 삼킨 모든 눈물과 슬픔을 대신 전하고 있다.
우리에겐 ‘Alexandria’라는 곡으로 먼저 알려진 에반씨아 레부치카는 ‘그리스’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지중해’에 속한 음악을 들려준다. 발칸과 아랍, 북아프리카, 그리고 집시의 정서까지 녹여내는 그녀의 음악적 개성은 상당 부분 독특한 악기편성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부주키와 아르메니아의 현악기를 중심에 두고 피아노와 기타, 아코디언, 지중해 여러 지역의 토속 악기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기품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사운드를 창조한다. 곡을 쓸 때는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으로 작곡한다고 말하는 에반씨아 레부치카, 그녀의 음악은 평범한 풍경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탁월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08_ Bantry Girls Lament / irish whistle. Joanie Madden, vocal. Mary Black & Frances Black
조니 매든 Joanie Madden은 아일랜드 전통 휘슬 연주자이자 켈틱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미국의 브롱크스에서 성장한 조니 매든은 어린 시절에 배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대신 그녀의 유전자에 새겨진 악기 ‘아이리쉬 휘슬’을 택했다. ‘Cherish the Ladies’의 리더로 활동하는 동시에 솔리스트로도 명성을 얻었으며, 아일랜드 뮤지션들과의 협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Bantry는 아일랜드 남서쪽 바닷가 마을로 오래 전부터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곳이다. ‘Bantry Girl’s Lament’은 스페인의 침략에 맞서 전장에 나간 용사들을 그리는 여인들의 노래다.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이 곡을 메리 블랙 Mary Black과 프란시스 블랙 Frances Black 자매가 용감한 Bantry 여인처럼 부른다. 조니 매든의 휘슬은 Bantry 여인들이 감춰둔 눈물처럼 다가온다.

09_ Tierra del Fuego / Joel Francisco Perri
‘세상의 모든 음악’이 첫 출발을 하던 무렵, 시그널 음악 ‘Tiger in the Night’과 더불어 청취자들을 사로잡았던 음악이 ‘뮤직노트’의 코드 음악 ‘Tierra del Fuego’였다. 날이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던 안데스 악기의 울림은 노을과 어우러져 뭉클한 감정을 실어다 놓곤 했다. ‘Tierra del Fuego’- ‘불의 땅’은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군도로 칠레와 아르헨티나로 나뉘어 있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한 지역이며,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에 나오는 Ushuaia 등대도 이곳에 있다.
‘Tierra del Fuego’의 작곡자이자 연주자인 조엘 프란시스코 페리 Joel Francisco Perri는 프랑스 인이지만 안데스 플루트에 심취해서 ‘Los Calchakis’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데스 태생의 연주자보다 더 강렬한 안데스 사운드를 들려주는 그의 열정이 이 곡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안데스 플루트의 거장인 그가 또 다른 악기인 만돌린을 연주하며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을 담은 음반을 발표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10_ Ninna Nanna / Angelo Branduardi
‘Ninna Nanna’는 이탈리아어로 ‘자장가’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음유시인 안젤로 브란두아르디 Angelo Branduardi가 불러주는 ‘Ninna Nanna’는 아기를 잠재우는 엄마의 자장가처럼 다정하거나 달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묵은 상처, 오래된 기억을 치유하는 영혼의 자장가처럼 담담하게 들린다. 시를 읊듯 노래하는 안젤로 브란두아르디는 예이츠의 시도, 예세닌의 시도, 스코틀랜드에 전해지는 민요도 영혼의 치료제로 만드는 연금술사 같다. 5살에 바이올린을 배울 때부터 ‘음악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안젤로 브란두아르디는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은발의 노장이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음유시인으로서의 기품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마치 학자와 같은 자세로 문학과 음악을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Ninna Nanna’의 원곡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민요 ‘Mary Hamilton’, 우리에게는 마리 라포레 Marie Laforet나 존 바에즈 Joan Baez의 노래로, 또 양희은이 부른 번안곡 ‘아름다운 것들’로도 익숙한 선율이다.

11_ Forest Hymn / Bill Douglas
‘세상의 모든 음악’이 첫 출발을 하던 2002년,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에세이를 들려주는 코너가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그 코너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는 조금 일찍 쓴 일기 같고, 하루의 반성문 같은 잔잔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배경으로 깔리던 음악이 빌 더글라스 Bill Douglas의 ‘Forest Hymn’이었다. 빌 더글라스는 클래식 FM과 인연이 깊다. 밤 10시에 방송되는 ‘당신의 밤과 음악’의 시그널 ‘Hymn’ 역시 빌 더글라스의 작품으로, 마치 그 프로그램을 위해 작곡된 음악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빌 더글라스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토론토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바순을 공부했다. 그의 바순 연주는 평균 온도 섭씨 20도의 봄날 같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순을 연주하는 동시에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도 연주하는 유연함이 그의 음악 곳곳에 스며 있다. ‘Forest Hymn’에는 첼로로 표현되는 숲의 그윽함, 바순이 전하는 은은한 햇살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빌 더글라스가 추구하는 느린 호흡과 봄날의 오후 같은 온도에 일상을 고정하고 싶어진다.

12_ Take it with Me / Solveig Slettahjell
솔베이 슬레타옐 Solveig Slettahjell은 오슬로 근처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7살 때부터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피아노 앞에 앉아 그날의 가장 멋진 것들을 담아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곤 했다는 소녀는 찬송가, 흑인영가, 노르웨이의 민요와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며 음악으로 충만한 성장기를 보냈다. 노르웨이 음악 아카데미에서 재즈를 공부할 때에는 실험정신 가득한 음악작업에 도전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만난 피아니스트 Hakon Hartberg와 듀오를 결성해 재즈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최근에는 재즈 트리오 ‘In the Country’에서 활동하며 찬송가에서 노르웨이 민속음악, 레너드 코헨 Leonard Cohen과 톰 웨이츠 Tom Waits의 작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으면 부드럽고 편안하다.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면 무척 독창적이고 신비롭다. 최고의 노르웨이 재즈 싱어 솔베이 슬레타옐의 목소리로 톰 웨이츠의 곡 ‘Take it with Me’를 듣는다. 노래 안에 뉴올리언즈도 있고, 오슬로도 있고, 피요르드도 있으며, 사랑의 기쁨과 슬픔도 어깨를 맞대고 있다.

13_ Si Dolce e il Tormento / trumpet. Paolo Fresu, accordion. Richard Galliano, piano. Jan Lundgren
트럼페터 파올로 프레주 Paolo Fresu, 아코디언의 거장 리샤르 갈리아노 Richard Galliano, 그리고 피아니스트 얀 룬드그렌 Jan Lundgren으로 이루어진 재즈 트리오는 종종 원곡의 느낌을 잊을 정도로 매혹적인 해석을 들려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세 거장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화음이 탁월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에서 자작곡까지 그들만의 색채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이들은 진지하고 무거운 곡도 부드럽고 감미롭게, 가벼운 곡을 돌연 깊이 있게 연주해내기도 한다.
‘Si Dolce e il Tormento’ - ‘달콤한 고통’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 곡은 16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의 가곡을 새롭게 해석한 곡이다. 사랑을 잃은 남자의 아픈 마음을 담은 이 곡은 테너 롤란도 비야존 Rolando Villazon이나 카운터테너 필리페 자루스키 Phillippe Jaroussky의 노래로 자주 듣곤 했다. 하지만 재즈 트리오 연주로 듣는 ‘Si Dolce e il Tormento’는 몬테베르디의 작품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감미롭다. ‘달콤한 고통’의 의미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게 하는, 최고의 연주다.

14_ Tristesse(쇼팽/이별곡) / Tino Rossi
쇼팽은 이별에 익숙한 작곡가였다. 조국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이별을 겪었고, 첫사랑과의 아픈 이별을 겪었고, 조르주 상드와의 냉혹한 이별도 겪었으며 이 세상과도 너무 일찍 이별했다. 이별의 이력이 유독 많은 작곡가가 남긴 ‘Tristesse’는 느리고, 느린 만큼 애절한다. 쇼팽이 남긴 27개의 연습곡 중의 하나인 이 곡은, 쇼팽 스스로도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각별하게 아낀 곡이다.
쇼팽의 이별곡을 아날로그적 매력 물씬한 노래로 되살린 테너 티노 로시 Tino Rossi는 코르시카의 아작시오 태생의 성악가다. 영화배우로 활동할 정도로 실력과 외모가 출중했던 티노 로시가 오페라에 출연하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여성 팬들로 객석이 가득 찼다고 전해진다.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Tristesse’에서 그의 감미로운 음성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15_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 강상구 (해금. 정수년)
우리 전통 음악에서 해금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최근의 창작음악에서도 해금의 활약은 눈부시다. 말총과 대로 이루어진 해금은 네 개의 손가락으로 음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해금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만들어내는 음악 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해금의 매력을 일깨운 연주자로 단연 정수년을 꼽는다. 절제된 표현력으로 한 음 한 음 이야기를 담아내는 정수년은, 악기를 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앉아 그 자신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듯 관조의 음악을 들려준다.
‘슬기둥’의 멤버로 활동하며 들려준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의 감동을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에서는 조금 더 은은하게 표현해 낸다. 윤동주 시인이 별 하나에 아름다운 것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 것처럼 정수년이 들려주는 해금의 선율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씩 호명해 보고 싶다.

글 / 김 미 라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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